김천 증산초, 두 세대가 만난 교실의 ‘딜레마’

  • 등록 2025.07.21 09: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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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마을에서 벌어진 교육권 충돌
지역사회와 해법을 찾아가는 현장

디지타임즈(DGTIMEZ) 최신형 기자 |경북 김천시 증산면 깊숙한 산골 마을. 아침 안개가 걷히면 작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에는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다른 한쪽에는 주름진 손으로 연필을 쥔 어르신들이 앉아 있다.

 

이곳 증산초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령초과자 교육’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의 간절한 학습 의지와 정규 교육과정을 받아야 할 아이들의 교육권이 한 교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2년 가까이 지역사회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김천교육지원청(이하 교육청)은 21일 이례적으로 증산초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입장문 서두에서 모태화 교육장은 “열악한 교육환경의 오지이기에,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야 할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온전히 돌려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그의 발언에는 교육 현장의 복잡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현재 증산초등학교는 소규모 소인수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한 교실에서 두 개 학년이 함께 수업을 받는 복식 운영 체제다. 여기에 학령을 초과한 어르신들까지 함께하면서 담임교사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집중되어야 할 교육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현재 수업을 받고 있는 어르신들을 ‘학생’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모 교육장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계시니 학생”이라며 “교실을 사용하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스쿨버스를 이용하고, 급식도 하는 분들을 어떻게 학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문제의 뿌리는 증산 지역의 특수한 지리적, 사회적 환경에 있다. 산간 오지인 이곳은 시내의 평생교육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과거 교육 기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성 어르신들에게는 마을 초등학교가 유일한 배움의 터전이 되고 있다.

 

교육청이 제시한 해법은 ‘상생’이다. 지자체 평생교육과 및 김천시 희망학교와 연계해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되, 정규 교육과정은 분리 운영한다는 것이다. 분교장 전환이 되더라도 교실 개방과 등하교 교통편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예산의 현실적 제약은 여전히 남아있다. 학교 운영 예산은 학급수와 학생수를 기준으로 편성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포함되어도 사용 가능한 예산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천시장의 적극적인 관심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청은 “시장님께서 이러한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어르신들을 적극 도우려 하신다”며 지자체 차원의 평생교육 확대에 기대를 표했다.

 

모 교육장은 마지막으로 “학원도 없이 오로지 선생님께 의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발 선생님을 돌려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딜레마에 대한 진솔한 고민이 묻어났다.

 

증산초등학교의 이야기는 단순한 교육 정책의 문제를 넘어선다. 소외된 지역의 교육 불평등과 세대 간 교육 격차, 그리고 한정된 자원 속에서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현실적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 작은 산골 학교에서 찾아낼 해답이 우리 교육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최신형 기자 cham7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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