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타임즈(DGTIMEZ) 이기훈 기자 |
삶을 감당하다
塞翁之馬(새옹지마)의 사자성어를 다들 한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중국(中國)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로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변방 어르신의 말’ 정도가 될 것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내용을 요약해 보면...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다른 한필의 말을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 젊은이들은 싸움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大部分)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 네이버 인용-
이런 유래 덕분에 어려운 일이 생긴 사람에게 위로하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필자는 이 이야기에서 조금은 다른 관점의 의문이 떠올랐다.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무얼 하고 계셨을까?”
“방안에 웅크려 계셨을까? 단지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을까?”
“자포자기한 삶과 할아버지의 삶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럼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그대로 두기만 하면 다 좋아지는 걸까?”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 들 속에서도 할아버지는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마당에 풀을 뽑고, 밭일을 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할아버지는 일상을 묵묵히 감당하며, 하루를 살아내신 건 아닐까?”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길흉화복의 사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삶을 감당하며 살아나가는 것 외에는 없음이 명확하다. 지금 하루 삶을 감당한다는 것은 밥을 준비하는 일이고, 밥을 먹는 일이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 출발을 묵묵히 감당하여 일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삶이다.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이렇게 감당한 삶의 결과물로 우리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삶이고, 삶은 그 자체로서 온전히 가치 있는 것이다.
변방의 할아버지처럼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상을 감당하는 실천을 해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