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타임즈(DGTIMEZ) 이기훈 기자 |
빛나는 그대 왜 반짝이려 하는가?
둘째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 2명이 집에 놀러 와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 하던 중이었다. 반갑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난 후에 잠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빛나다와 반짝이다의 차이는 뭘까?”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한 친구가 답했다.
“빛나다는 좀 오래 빛이 나는 거고, 반짝이다는 잠깐 빛이 나는 거 아닐까요?”
“오~~ 호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좋은 관점!”
또 한 친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빛나다는 아주 환하게 비추는 거고, 반짝이다는 좀 작게 비추는 거... 뭐 그런 건가요?”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둘째 아이는 이미 들어본 질문이라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 가지로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는 빛나다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고, 반짝이다는 다른 빛에 반사될 때 쓰는 표현으로 생각되네...”
두 친구가 조금 관심이 간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느낌이 들어 이어서 말했다.
“자 그럼 여기에서 두 번째 질문. 빛나는 너는 왜 반짝이려 하는가?”
순간 정적이 흐르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한 친구가 말했다.
“이런 이야기 어른들에게 처음 들어봐요!”
“그렇구나! 너희들의 반응을 보니 더 이상이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빛나는 존재인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빛에 반짝거리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닌지 정말 깊이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를 한번 떠올려보라! 빛나는 존재임을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뒤집을 때 걸음마를 뗄 때 모두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 빛나는 아이를 우리는 왜 점점 잊어버리게 된 걸까?”
이 질문에 공감하는 당신이라면 다시 한번 묻기를 바란다.
“나는 나를 스스로 빛나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가?”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세상의 많은 비교대상들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나의 경제력이 생각나고, 나의 생활이 떠오르고, 아이들의 대학교가 가로막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질문에 “나는 스스로 빛나서 내 안에서 충만함이 가득하다.”라고 답하기 어렵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횟수나 지속성에 상관없이 그렇게 빛나는 경험의 순간을 정확히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제 남은 건 ‘빛나는 나’를 받아들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는 것이다.
“반짝이려 애쓰기보다 빛나는 나를 느끼는 그 길로...”
‘빛나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동사로 ‘ 빛이 환하게 비치다.“이다
‘반짝이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동사로 ‘작은 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로 확인할 수 있다. - 표준국어대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