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다는 걸 아는 것
'섬' 함민복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함민복 시인의 강의를 여우숲 인문학 모임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본인 삶의 대한 이야기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중에 불현듯 말씀을 꺼냈습니다.
“인문학! 다르지 않다는 걸 아는 것 아닌가요?”
그 말씀을 듣고 제일 먼저 나를 떠나지 않던 생각은
“같은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이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것은 그 깊은 본연과 드러남이 모두 같을 때를 말하는 것이고, 다르지 않은 것은 그 깊은 본연은 같지만 드러남에 있어서는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나타난 모습이 그 깊은 본연과 완전히 같다고 믿어 버리면 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의 차원을 보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르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 첫 번째로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잣대에 의해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해서 판단하고 있지만 더 깊은 곳을 찾아 들어가면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확장해서 나아가면 모든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지점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저의 스승님이신 숲 철학자 김용규 선생님은 ‘길가의 저 풀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를 깨달은 공부의 차원을 초월을 향하는 삶의 차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이 초월적인 삶의 차원은 여전히 흐릿하기만 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 모두가 다르지 않다는 지점은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일이 다르지 않습니다.
방을 청소하는 일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이 다르지 않습니다.
설거지를 하는 일과 회사를 출근하는 일이 다르지 않습니다.
길을 걷는 것과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이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일을 행한 후에 보상이 다를 순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상은 우리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일을 행하는 나 스스로에게 있어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든 일에 진심 전력을 다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태도 일 것입니다.
로버트 존슨의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란 책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한 남자가 외바퀴 손수레를 밀며 가는 일꾼을 보고 지금 뭘 하느냐고 묻는다. 일꾼은 대답한다.
“보면 몰라요? 손수레를 밀잖소”
또 다른 일꾼이 좀 전의 일꾼과 똑같이 하며 오는 걸 보고 남자는 또 묻는다.
“지금 뭘 하시오?”
일꾼은 대답한다.
“보면 몰라요? 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잖소, 샤르트르 대성당을 짓는 중이라오.”」
손수레를 미는 일과 신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그대는 손수레를 밀고 있나요? 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