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타임즈(DGTIMEZ) 이기훈 기자 |
“20분!” 실제로 빗길에 우산을 쓰고 걸었던 시간입니다.
6월부터 올 여름 장마에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화도 하나 준비하고, 일터에 우산도 하나 더 가져다 두고, 가방이 젖을까 봐 방수덮개도 자주 조회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비도 많이 오고 덥다는 데 잘 넘겨야겠다고 하는 말이 입버릇이 된 듯한 한 달이었습니다. 그렇게 비는 걱정 또는 대비라는 명목으로 자주 오랫동안 저의 생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오늘 아침햇살을 맞으며 걷는 출근길, 이마에 땀방울이 기지개를 켜려고 할 때 즈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오늘까지 실제 내가 빗속을 걸은 시간이 얼마는 되지?’
정확히 기억합니다. 횟수로는 1회, 시간으로는 20분입니다.
비를 만나 우산을 쓰고 실제 걸은 시간은 ‘1회. 20분’
비에 대한 생각이 나를 차지하고 있던 시간은 6월 동안 대략 ‘40회 60분’
정확한 수치적 비교는 어렵겠지만 더 많은 횟수와 시간이 있었음은 사실입니다. 물론 구입해 둔 장화는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장마가 끝이 난 건 아니고 다음 주에 비소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지만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무얼 걱정하고, 어떤 상황을 대비한 걸까요?’
“제가 비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그때, 실제 내가 존재하던 그 순간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상황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비 걱정하며, 일을 수행할 때보다는 좀 더 성실히 그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었을 듯합니다. 저의 일상에는 이러한 일이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주말을 기다리느라, 일상이 있는 평일을 집중하지 못한 경우’
‘퇴근을 기다리느라, 지금 업무를 놓고 마치기만을 기다린 경우’
‘만남을 위해, 약속장소에 가는 과정을 놓친 경우’
일일이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제 삶에 가득 차 있는 듯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나는 진짜 나일까요?”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나’와 ‘현재에 그 순간에 존재하는 나’는 어떻게 다를까요?”
너무 많은 질문들이 있지만 기회 될 때마다 하나씩 풀어 가보면 좋을 듯합니다. 이런 모순 적 상황이 일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 오류가 있는 듯합니다.
과거라는 시간과 미래라는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요?
과거의 ‘지금 이 순간’과 미래의 ‘지금 이 순간’ 만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의 경험을 계속 가져옵니다. 심지어는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현재의 기준(과거의 경험치를 포함한)으로 판단해서 예측합니다. 미래의 기준으로 실제 미래가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에게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장마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제가 올여름 장마를 걱정한 것은 과거 장마의 경험이 나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불쾌감에 대한 걱정, 신발이 물이 젖는 불편함에 대한 대비를 생각하며,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사건은 나의 이런 걱정이나 대비에 상관없이 1회 20분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비가 많이 올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미래의 비의 양과는 상관없이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산을 준비하고 장화를 구입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걱정하고, 대비 잘했다고 뿌듯해하는 모든 감정들은 제가 지어낸 이야기 일 뿐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그때 그 순간에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입니다.
계획의 목적지가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 그 순간인 것처럼 말입니다.
삶의 목적지가 죽음이 아니라, 일상을 감당하는 과정의 그 순간인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하루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위한 긴 호흡이 필요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