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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의 사(思)소한 이야기

[이기훈 칼럼] 진짜 나는 누구일까요?

디지타임즈(DGTIMEZ) 이기훈 기자 | 

진짜 나는 누구인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절망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때를 이야기한 내용을 옮겨보자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살수 없어. 도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이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 때 불현듯,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생각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나가 아닌 둘이란 말인가? 내가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둘이어야 마땅하다. 평소의 내가 있어야 하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인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이야기를 톨레는 ‘존재’와 ‘마음과 나를 동일시하는 나’로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톨레의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진짜 ‘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물론 아래 내용들은 순전히 저의 견해입니다.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부분이라서 동의하시지 않은 분들은 그냥 글쓴이의 의견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김기석 목사님의 ‘고백의 언어들’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우리 존재의 실상인 동시에 과제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띈 존재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나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쳐야 하는 과제를 지닌 ‘나’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는 모두 우주이다.

톨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책에서 우주 전체가 모두 비어있다면 우주를 드러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텅 빈 우주 자체를 우리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우주 안에 존재하는 하나라도 있으면 이제 우주는 나타나집니다. 즉 내가 현시되어 나오는 순간 내가 존재하고, 그 배경으로서 우주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모든 만물은 그 자체이기도 하고, 우주를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저의 견해로는 이 내용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색’으로서의 사물은 그 자체로 ‘공’의 우주를 드러내고, 그 ‘공’의 우주가 없으면 ‘색’의 사물 역시 존재할 수 없으니 ‘색’과 ‘공’은 다르지 않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잭 콘필드는 ‘마음이 아플 땐 불교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색을 개별성으로, 공은 보편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죽는 보편성의 ‘공’과 나의 죽음이라는 개별성의 ‘색’의 관점이 있는데 죽음을 대할 때 우리는 이 두 관점 모두를 가질 수 있어야 고통을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지점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3.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중용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풀어보면 하늘이 내게 내린 것을 ‘성’이라 한다. 그 ‘성’을 따라 사는 것이 ‘도’이다. 그 ‘도’를 수련을 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부여받은 그 훼손되지 않은 ‘성’을 가지고 있고 그 ‘성’이 가리키는 대로 살면 바로 ‘도’가 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때 ‘성’이 바로 하늘(우주)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늘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실유불성 견성성불’과 같은 이야기 일 것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게는 ‘불성’이 있다. 그 ‘불성’을 만나기만 하면 ‘성불’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성불’과 ‘도’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많은 경전에서 설명하는 이 지점이 진짜 ‘나’를 만나는데 실마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진짜 나가 부여받아 펼쳐내어야 하는 그것은 아마 하느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 공자님의 ‘인’ 일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나 경이로워서 부족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풀어보았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만나게 될 다음 지점들이 저를 자유롭게 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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