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타임즈(DGTIMEZ) 이기훈 기자 | 저의 일터 앞 산기슭을 따라 산딸기가 덩굴지어 열매가 열려있습니다.
6월의 어느 날 빨간 산딸기 열매가 보여 따 먹었습니다. 한참을 먹었더니 허기를 달래정도의 양이었습니다. 다음날에 보았는데 또 빨간 열매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는 숲 아래쪽으로 번져있는 산딸기도 보였습니다. 한참을 정신이 팔려 맛나게 먹었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이제는 작은 통에 2통이나 담을 수 있는 양이 되었습니다.
주말 연휴가 지난 뒤 작은 통보다 4배 정도 큰 통을 담을 만큼의 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이번에도 큰 통을 들고 갔지만 이제는 큰 통의 3분의 1 정도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손과 팔을 산딸기 가시넝쿨에 긁히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참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전날 내가 수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익어 있는 산딸기에 반가운 마음과 신기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빛과 양분에 따라 익는 시기가 순차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조금 큰 통을 들고 산딸기를 따던 중에 갑작스레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딸기나무는 내가 원망스럽지 않을까?’‘일 년 내 애쓰면서 꽃 피우고 맺은 열매를 빠른 손길로 따가는 내가 밉지 않을까?’
그런 원망의 마음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자기의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가시만이 나의 피부에 생채기를 만들 뿐이었습니다. 마치 내가 열매를 가로채 가는 것과 자기가 열매를 영글게 하는 것은 별개의 일인 듯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묵묵히 자기 할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태풍을 원망하는 사과나무가 없습니다.
장마를 미워하는 딸기가 없습니다.
바람을 없애버리려는 오동나무가 없습니다.
인간의 발자국을 두려워하는 풀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닥쳐온 그 삶을 감당해 내는 생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산딸기나무는 가시를 내어 자신의 꽃과 열매를 지키려 최선을 다하지만, 열매를 가로채 가는 저의 손길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이렇게 삶을 감당해 내는 생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나에게 생긴 일에 대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구분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을 표현합니다. 나쁜 일이 나에게 안 생기길 바랍니다.
그 나쁜 일을 가져온 상대를 원망합니다. 그 상대가 가족일 때도 있고, 동료일 때도 있고, 심지어 날씨일 때도 있습니다. 가장 원망이 클 때는 그 상대가 바로 나 자신일 때입니다. 내가 나를 못 견뎌할 때 가장 힘이 듭니다.
‘못 견디는 나’는 누구고, ‘못 견디게 만드는 나’는 누구일까요?
생각의 소용돌이에 벗어나고자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가로저어 보아도, 내가 있는 자리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제 잃어버린 열매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내일 열매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오늘 열매를 영글게 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산딸기나무를 깊이 오랫동안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삶을 감당하는 내가 참 귀합니다. 그 감당하는 순간에만 ‘못 견디는 나’와 ‘못 견디게 만든 나’가 서로 하나가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지금 여기”라는 많은 깨달음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오늘도 하루를 감당해보렵니다.”